성서침례교회
성서침례교회에 대하여
  • 성서침례교회(Bible Baptist Fellowship)라는 고유명사는 미국의 최대 교단인 남침례교회 (Southern Baptist Convention)에 그 역사적 뿌리를 둡니다. (미국의 '남 침례교회'는 한국의 '남 침례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 한국의 침례교회는 김기동 일파가 설립한 사이비 침례교회이기 때문에 미혹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남 침례교회는 한국의 기독교 한국 침례회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한 자유주의 사상이 미국 내의 여러 교회와 신학교는 물론 남 침례교회에까지 침투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 시작을 가지고 있던 프랭크 노리스(Frank Norris:1877~1952), 빅 박사(G. B. Vick), 노엘 스미스(Noel Smith), 웬델 지머민(Wendell zimmerman), 아트 월슨(Art Wilson), 다우어 (W.E. Dowell), 존 롤링스(John Rawlings), 프레드 다널슨(Fred Donnelson), 우드워스(R.O Wood-worth)등을 비롯한 120여명의 목사들이 1950년 5월 24일 미국 텍사스 주의 포트워스(Fort Worth)에서 성경 중심적이고 철저히 보수적인 교회들을 세워 영혼구령과 세계 선교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각오로 성서침례교회 친교히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미국 내에 6개의 신학 대학 및 신학대학원이 있으며, 미국에만 해도 약 4,300여 교회가 성서 침례 친교회에 소속되어 미국 남 침례교회 다음으로 두 번째 큰 단체를 형성하였습니다.
  • 성서침례교회는 시작 때부터 세계 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현재 94개국에서 900여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고, 이들로 인해 세워진 해외 교회가 2,700여 교회에 달합니다. 한국에는 1954년 포스터(Isaac Foster)선교사가 6.25직후에 들어와 시작이 되었으며, 포스터 선교사 이외에도 배스킨(Jack Baskin), 휘커(Onsy Whicker)같은 초기 선교사님들이 많은 공헌을 해 현재 약 200여개의 교회가 성서침례교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친교회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인 성서침례대학원 대학교(총장 김우생 박사)는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장평리 280번지에 소재 해 있고, 현재 13가족이 한국성서침례교회의 인준을 받아 해외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개 교회에서 파송 된 여러 선교사들이 해외 선교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 연산 성서침례교회는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교회로서 한국 성서침례친교회에 속해 있습니다.(www.bbfk.org)
  • 본 교회는 연산동에 1969.11월에 설립된 독립침례교회로서 미국의 최대교단인 침례교회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는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교회입니다.
  • 본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철저히 지키면서 복음전파와 세계선교에 헌신한 교회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세상과 소통하며, 예수의 사랑으로 세상을 더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해 겸손함과 유연성과 열린 태도를 견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전통을 존중하되 전통주의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존중합니다. 또한 경쟁사회에서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교회다운 교회, 희망을 주며 잃어버린 웃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행복을 전달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현재 3개의 교회와 6명의 목회자를 배출하였으며 1대 담임목사인 손춘영 원로목사님은 캄보디아에 선교사로 파송하였으며 유봉호 목사님이 2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 연산성침례교회의 특징
    1)우리는 교리에 있어서 보수적이나 태도에 있어선 온건합니다.
    우리의 신앙이나 교리에는 절대적인 것, 확신적인 것, 취향적인 것 세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사수해야 할 진리입니다. 확신적인 것은 성경해석의 차이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해석 중에는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이단적 해석이 아니면서 나와 다른 해석도 가능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정죄하는 태도보다 조금 더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취향적인 것은 각 교회, 각 목사, 각 교단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는 구애받지 않습니다. 태도에 있어서 온건하다는 것은 우리가 행통과 표현에 있어서 극단적인 것을 피함을 뜻합니다. 우리는 행위에 있어서 폭력적이거나, 혹독하거나 혹은 공격적이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고자 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근본주의적 독립 침례교 유산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위대한 사명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지상사명에 초점을 맞추며 선교사역에 힘쓰며, 탁월한 새 헌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하게 서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을 위해 다시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우리는 방법에 있어서 진보적입니다.
  • 변화는 날마다 오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나이 든 사람들은 20세기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가를 실감합니다. 주판이 사라지고 컴퓨터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말에서 내려와 우주여행으로 몰려가서 달 위까지 걷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방식은 모든 면에서 변했습니다. 우리 교회들의 전도방법 역시 변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방법론에 관한 목사들의 논쟁이 때로는 첨예하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지역교회의 자율성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나 목사도 다른 교회나 목사에 대해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3)우리는 정신과 마음에 있어서 관대합니다.
  • 우리는 교리에 있어서 자유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대함이란 잃어버린 세상에, 그리고 서로에게 우리 자신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의미합니다. 이런 정신은 우리에게 이익이 됩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잠 11:25)
  • 4)교파의 가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경적인 정의에 의해 침례교도입니다.
  • 우리의 친교의 기초는 신조입니다. 우리가 믿는 모든 교리, 예배형식은 모두 성경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입니다. 비성경적인 교리는 철저히 배격합니다. 우리의 교리서는 서신서입니다. 교파 혹은 교단은 교회사의 후대에 발전된 것입니다. 신약의 교화론은 지역 교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 5)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외우지 않는 것은 성서침례교회는 역사적인 뿌리나 교회의 전통이 다른 교단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교회들 중엔 다양한 예배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순절 교회이면서도 사도신경을 하지 않는 잭 헤이포드, 로버트 술러, 침례교단인 릭 워렌 목사님의 새들백 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윌로우 크릭 교회, 제리 포웰의 토마스 로드침례교회들이 다 사도 신경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최대교파인 침례교회는 물론, 성서교회(Bible Church-순수 독립 교회로서 교단 형성이 전혀 되어있지 않으며, 미국 내에 수만 교회가 있음.), 복음적 자유교회도 있습니다. 이 교단에 속한 유명한 신학교가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이고 한국의 자매학교가 하용조 목사님이 총장으로 있는 트리니티 신학대학원대학교입니다. 이런 교단이나 교회들이 모두 사도 신경이나 주기도문을 예배 때마다 외우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예배 때마다 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은 형식이나, 강요, 형식으로 굳어지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달라스 신학교, 탈보트 신학교, 버지니아의 리버티 대학교 모두 사도신경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외국의 보수적인 교회나 교파에서는 전혀 문제삼지 않거나 중시하지 않는 것을 한국교회에서만 유독 강조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가!
  • 6)사도신경을 하징 않는 것은 성경이 아니기 때문이며, 사도들이 만든 것도 사도들이 제정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사도 신경은 천주교회가 지배하던 AD700년경에 오늘의 형태로 완성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의 초기형태는 2세기말 (약 170년경)에 나타납니다. 침례 받을 때나 불신자들의 질문에 손쉽게 답변하기 위한 목적으로 간단한 신앙고백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의 형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육체의 부활을 믿습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러한 단순한 초기형태에 한 구절씩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Holy Chunch"(Sanctam ecclesiam; 거룩한 공회)에 "Catholic"(보편적이라는 의미도 되고 천주교회라는 의미도 됨) 이라는 수식어가 AD650년에 들어가고 "성도의 교통"(sanctorum communionem)이라는 표현은 모두 천주교회가 지해하던 AD690년에 더해졌으며, AD750년에는 "하데스(또는 지옥)로 내려갔다."는 말이 삽입되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말 사도 신경에는 없습니다.) "거룩한 공회"란 카톨릭교회만이 지상에서 유일한 교회이므로 자기들 교회의 결정대로 믿고, 교회의 머리인 교황의 명령을 따르겠다는 내용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중에 특히 "성도의 교통"은 지금도 천주교회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교통으로 해석해 소위 천주교회의 성자들에게 기도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점진적으로 형성되었고, 특히 천주교회의 지배하에 여러 구절이 더해져 오늘의 형태가 된 사도신경을 왜 예배 때마다 반복해야 되겠습니까?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이단이라고 비난해야 합니까? 또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만든 것도 사도들이 제정한 것도 아닙니다. 또 신악 성경의 모든 신앙을 다 바르게 표현한 것도 아닙니다.
  • 7)주기도문을 개인 기도생활의 교훈과 유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으나 공적예배에서 의무적으로 반복하여 사용하지 않습니다.
  •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의 기도(Lord's Prayer)는 '주기도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마6:9)는 말씀은 이런 방식으로, 이런 원리로 기도하라는 의미이지 예배 끝날 때마다 반복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무ㅠㄴ에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행하듯이 예배가 끝나는 신호로 주님의 기도를 사용하는 것은 주님의 기도를 형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도 신경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내용도 계속 반복하면 필연적으로 형식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형식화되어 의미 없이 반복되는 것을 반대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성경 말씀이고, 또 주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기도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 8)축도의 의미가 다릅니다.
  • 사도바울은 고리도후서13:3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아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라고 복을 빌었습니다. 이런 성경적 축복카드는 참 좋습니다. 그런데 Catholic교히나 다른 교단 등에서 행하는 축도의 개념은 좀 다릅니다. "안수 받은 목사 혹은 사제에게만 축복권이 있다."는 사고는 교회의 권의주의가 만들어낸 전통입니다. 모든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 (벧전2:9)이기 때문에 축도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인 '만인 제사장직'을 부정합니다. 남에게 복을 비는 일은 모두 성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우리들의 현실은 공적예배에서 담임 목회자에게만 축복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개혁자들이 진정으로 이루고 싶어하던 만인 제사장직의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경건하고 성숙한 목사를 존중하고, 그 분의 기도를 받는 것을 귀히 여기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살전5:12~13,갈6:6), 목사만이 축복기도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은 분명히 옳지 않습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자하여 기도합니다.
  • 9)믿는 자의 침례(Believer's Baptism)를 실천합니다.